이케부쿠로 역앞에 갔다가 우연히 헌책 축제와 마주쳐, 진보초의 헌책방을 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회자되는 요즘, 길거리에서 조그만 책방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매대에 전시된 책들의 페이지를 넘기며 이리저리 비교하고 골라 책을 사는 시대가 이미 아닌 것이다. 책방에서는 책을 구경만 할뿐, 사는 것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매, 집에서 앉아 배달받는다. 편리한 시스템이기는 하지만, 책과 책방은 숨을 허덕거리고 있다. 그러니 진보초 거리의 헌책방들도 이곳저곳에서 '헌책 축제'라는 명분하에 책을 내다파는 것일까?
진보초에서도 바로 얼마 전 북 페스티벌이 있었다. 그러나 페스티벌이 끝난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헌책방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카페들만이 진한 커피향을 풍기고 있다. 역사 깊은 책방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1층은 베스트셀러 더미와 카페와 잡화점이 동거하고 있다. 책을 둘러싼 씁쓸한 현실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발품을 팔아, 문고본 몇 권을 사들고 진보초 거리를 마냥 헤매다 돌길 뒤에서 신기한 건물과 마주했다. 간판에 '일본 하리스토스 정교회 교단-도쿄부활 대성당' 이라고 쓰여 있다. '하리스토스'가 뭘까 했는데, 예수의 그리스식 발음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그리스, 러시아를 통해 일본까지 전파된 정교회의 성당인 것이다.
입구에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입장료를 요구한 사람이 서양 아줌마여서 흠칫 놀랐다. 하긴 정교회는 동양에 뿌리가 있는 종교가 아니다. 아담한 규모, 카테드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지만 유리창을 수놓은 스탠드글래스, 금박으로 수놓인 예수와 성모 마리아상, 살랑살랑 흔들리는 촛불, 촛농이 녹아내리는 냄새 등, 성당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고요함과 엄숙함은 여느 성당 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