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oko Kamishima

요코하마 야마테 공원

외국인들의 족적 10 W.H 스미스

Tomoko Kamishima
Sanghyun Seo   - 1분 읽은 시간

요코하마 야마테에는 거주지제도가 폐지되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일본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외국인 공원이 있었다. 조용하고 초록빛이 가득한 야마테 공원은 지금도 1880년대의 야먀테의 거주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또 야먀테 공원은 영국의 잔디테니스가 생겨난 틈도없이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테니스 경기가 이뤄진 장소이기도 하다.

야마테공원의 역사

1870년이전의 요코하마에는(물론 일본 어디에도)공원이라는 존재는 없었다. 그때까지의 일본에는 공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원래 프라이버시가 없이 얇은 벽으로 칸막이로 집을 만들어 살아온 일본인은 공원에 모이지 않고 언제나 타인과의 충분한 접촉이 있었다. 절 안이나 다이쿄의 정원은 보통 서민들을 위해 열려있었고 목욕탕은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이 가능한 사교장이었다. 또 축제나 불꽃놀이등의 오락도 연중행사로서 정착되어 있었다. 반면 개항 후 일본에 건너온 외국인들은 집안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적인 공간을 요구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넓은 공공장소를 필요로했다.

머지않아 거주민의 대표가 공원으로서 이용하기 위해 토지 22,000㎡를 일본 정부로부터 연간 403달러로 임대 계약을 맺었다. 바로 볼란티어에 의해 공원관리단체가 결성되어, 토지관리와 공원의 정비가 이뤄졌다. 하지만 임대료 납부가 연체되고 있었다. 일본 측의 세 번의 납부 요구에도 관리단체는 임대료 지불이 불가능해 영국공사관의 어네스트 사토가 당시의 카나가와현령 무쯔 무네미쯔와의 사이에서 교섭을 이어갔다. 그 후 1876년(메이지9년)에 영국에서 유행한 최신 스포츠, 테니스가 들어와 거주지 외국인 남녀들이 즐겼다. 그래서 공원내의 일부를 테니스 클럽을 빌려주는 안이 나왔다. 1878(메이지 11년), 교섭의 결과 , 레이디스 론테니스 앤 크로켓 크럽이 연 150달러로 토지를 빌리는 게 되었다. 이후 80년간, 야마테 공원은 외국인 전용 테니스장과 공원으로서 사용되어져왔다.

W.H 스미스

W.H. スミス(William Henry Smith)는 영국주재군의 사관으로서 1862년 일본에 온 후, 다음해 제대를 하고 요코하마의 거주민이 되었다. 그리고 거주지의 사교장, 유나이티드 클럽(1863년)을 만들고 매니저로서 일했다. 또 후에는 요코하마 그랜드호텔의 총지배인(1873년)으로 일했다. 즉, 요코하마 그랜드호텔은 객실 총 200실을 자랑하는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호텔로, 1867(게이오3년)년경에 호이가 호텔을 개업하려고 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한 후, 사진가 페리체 베어트가 매수하고, 임대한 그린부인이 신장개업했다. 요리장은 루이 베큐. 그 요리는 개업 초부터 찬사를 받았다. 1923년(다이쇼12년) 칸토대지진으로 호텔이 소실했으나, 그 이름만을 계승한 호텔 뉴그랜드가 1927년 오픈하고 새롭게 샐리 와일이 요리장으로서 일본에 왔다. 샐리 와일은 후에 일본서양요리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1870년, 스미스는 거주지에 생긴 새로운 공원 관리인이 되었다. 공원설립 얘기가 나왔을 때,스미스는 바로 매듭짓는 역할에 손을 들었다. 이것은 언제나 그랬다. 외국인거주지 안에서 스미스는 이전부터 여러가지 봉사활동을 해왔고, 그 공적으로 인해 큰 인덕을 쌓았다. 그런 스미스를 거주민들이 자선활동의 스미스 public spirited Smith로 불렀다.스미스는 유력거주민의 집을 한집,한집 돌고 공원설립의 자금을 모아 부족한 부분은 자신이 출자했다. 게다가 땀을 흘리며 흐르는 호수를 만들고 작은 다리를 만들어 정자를 세웠다.

영국인에 있어 가든은 교양의 일부로 불려지고 스미스도 정원만들기에 보통 이상의 정열을 부었다. 스미스는 관상용 꽃 뿐만 아니라 농원을 만들어 서양야채를 심었다. 당시는 야채도 과일도 모두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에 거주민의 식탁에 서양의 신선한 야채나 과일이 놓여있지 않았다. 그래서 스미스는 씨앗을 수입해서 키워 수확시기가 되면 근처 사람들에게 배분했다. 콩이나 모란채, 복숭아 등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남겨져있다.

Sanghyun Seo

Sanghyun Seo @sanghyun.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