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다양한 종류의 소주와 정종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맥주 또한 그 못지 않다. 아시아에서 맥주량이 가장 높은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 국민들의 맥주 사랑을 그대로 말해준다. 속이 출출해 선술집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가 "토리아에즈 비-루 오네가이시마스"(일단 먼저 맥주 부탁해요)이다. 자리 잡고 느긋하게 뱃속을 채우기 시작하기 전에 맥주로 목을 축이자는 뜻이다.
도심 한 가운데의 공터에서 맥주 축제가 열린다기에, 한 달음에 찾아가 보았다. 이름하여 오에도 비-루 마츠리.(오에도 맥주 축제)
흠, 축제라고 하면 주변의 공기마저 흥청흥청 흔들려야 하는데 어째 장소를 찾기도 쉽지 않다.
애써 꼬불꼬불 찾아들어간 곳에는 하얀 장막이 쳐져 있고, 그 안에서 웅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맞게 찾기는 했는데, 장막 안으로 고개를 살며시 들이민 객을 반기는 주인장은 누구 하나 없다. 용기를 내어 한 걸음 성큼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다행히 흥겨운 음악소리가 반겨준다.
일본 전국에서 모여 든 수제 맥주 장인들이 각 부스에서 분주하게 드래프트 맥주를 펌핑하고 있다. 좁은 통로에서는 안주거리로 파는 꼬치구이와 햄버그가 고소한 냄새와 함께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다. 요코하마, 나스 고원, 아키타, 도코로자와 등등의 지명이 눈에 띄고, 맥주의 본고장 벨기에와 프랑스의 맥주도 보인다. 각 고장 이름을 내걸고 파는 맥주들이다.
그 중에서 Miyata Beer라는 소박한 부스를 찾았다. 가게를 차린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맥주를 제조한 주인장이 직접 펌핑해 주는 신선한 맥주의 맛으로 짧은 기간에 꽤 유명해진 가게인 듯하다. 그 유명세를 확인하려 대뜸 골든 에일을 한 잔 주문했다. 플락스틱 투명한 잔을 가득 채운 진한 갈색의 액체, 지친 나를 달래주는 세상에서 가장 맛 나는 음료.
온도 탓인지 입술에 달라붙는 부드러운 거품이 이내 사라져 아쉬웠지만, 에일 특유의 깊고 쌉싸름한 맛은 일품이었다.
내친 걸음, 홀로 맥주 맛을 음미하고 싶어 가게가 있다는 곳을 찾았으나 문은 닫혀 있고 '오에도 맥주 축제 참가로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확인하지 않고 온 것이 잘못이다. 게다가 금, 토, 일요일 오후가 아니면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하니, 오늘처럼 무턱대고 찾아왔다가는 헛걸음하기 십상이다. 주중에는 맥주 제조에 집중하고, 판매는 금요일부터 주말에만 한다는 고집스러움이 맥주 맛을 내는 비결일지 모르겠지만, 훗날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돌렸다.